기린이 웃고 있어, 그러니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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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치료 혹은 카운슬링 아동학대 성인 생존자

얼마 전에 2년간 함께 동고동락해 온 카운슬러에게 작별을 고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몸에 이상이 올 정도로 감당해 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를 떠나 새로운 상담가를 찾는 것이 결국엔 나를 위한 최선임을 알았기에 결정을 되돌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심리적 충격이 어디까지 신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절절하게 느낀 지난 몇 주간이었다. 정말 큰 병이라도 걸린 게 아닌가 싶어 여기저기 검사를 받으러 다니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상담이 벽에 부딪친 이유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담가로부터 기인한다고 느낀 순간 이것이야말로 카운슬링 자체의 생래적 한계라고 생각했다. 카운슬링은 일방향이다. 클라이언트는 내밀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만 상담가는 일절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문제는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이 관계 역시 두 사람의 모든 것-고정관념, 애호, 신념, 믿음, 상처, 착오, 오해 등등-이 상호 작용하지만 한 사람(클라이언트)의 그것만이 드러나고 화제에 오르며 집중된다. 

카운슬러의 고정관념이나 편애 혹은 상처로 인한 시각이나 의견이 때때로 클라이언트 회복에 방해가 되거나 더 나아가서는 독이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얼마나 많은 상담가가 이를 인지하고 필요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상담치료의 궁극에 놓인 질문은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 과 같은 이 세상 누구나가 한번은 생각해보는 철학적 명제이다. 이러한 의문에 답할 수 있고 또 답해야 할 사람은 언제나 늘 자기자신이다. 치유의 여로를 어떤 사람과 같이 얼마 동안 함께 걸을 것 인지 대답할 수 있는 이도 스스로이다.

카운슬러와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역시 다른 인간관계처럼 불완전하다. 하지만 완전해야만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는 건 또 아니라고 믿는다. 두 불완전함이 진심으로 만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치유가 마치 새 생명처럼 태어난다고 믿는다. 클라이언트가 성장하는만큼 카운슬러도 같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혹은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는만큼 카운슬러도 자기의 아픔을 직면하지 않는다면 그 상담은 공허한 제자리 걸음만 무한반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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